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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 쇠렌 키르케고르

by 굿센스굿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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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Søre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덴마크의 신학자, 철학자, 시인, 사회비평가로서 19세기 유럽 사상의 전환기에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의 의미를 탐구하였습니다.

다양한 필명과 익명으로 쓴 저작들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작들을 다양한 필명으로 썼습니다.

[두 가지 종류의 서사](1843)는 버티고 아베니우스(Victor Eremita), [공포와 떨림](1843)은 요한네스 대 살렌토(Johannes de Silentio),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병](1849) 는 거부 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필명으로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관점과 대화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또한 많은 작품을 익명으로 남겼습니다.

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 쇠렌 키르케고르

[순간](1855)은 익명의 저자로서 키르케고르가 익명으로 쓴 [기독교 연설들](1848)을 비판하는 저서입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작품을 독자의 해석에 맡기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남겼습니다.

그는 "과제란 어려워야만 하고, 오직 어려움만이 고상한 마음에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와 기독교

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의 존재와 세계, 삶과 죽음, 자유와 책임, 믿음과 회의 등에 대해 현실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탐구하는 철학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후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키르케고르를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의 의미를 탐구하였습니다.

그는 헤겔의 관념론과 당시 덴마크 루터교회의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인간의 존재 방식과 관련된 심오한 질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이 이성적인 증거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희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이 때문에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에 속하는 사르트르나 니체와 달리 '기독교 실존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철학과 신학 그리고 심리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다

키르케고르는 철학과 신학 그리고 심리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시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감각, 삶과 운명, 정치와 역사 등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석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현대 사상에서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키르케고르는 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입니다.

창조적인 철학

그는 신앙과 자유, 실존과 한계, 삶과 죽음에 대해 현실적이고 창조적인 철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철학은 현대 철학과 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재 방식과 세계관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철학자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말년에 덴마크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펼쳤습니다.

"조국"이라는 신문에 기사를 쓰거나, "순간"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덴마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성서를 인용하여 묘지를 이동시키도록 한 사례를 비판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성서를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한스 리센 마를 텐 센 교수가 사망한 주교를 "진리의 목격자"로 부르는 연설을 한 뒤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리센 마르텐센의 생애를 신의 입장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비교할 때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생전에는 미결된 업적이 많았습니다.

그가 쓴 "순간" 제10호가 출간되기 전에 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병원에서 한 달 이상 입원한 후, 목사에게서 성만찬을 받는 것을 거절하며 병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친구 에밀 뵈센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때 자기 삶이 엄청난 고통을 지닌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자신에게는 실감한다고 말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한 달 넘게 입원한 뒤 척추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뇌레브로 구역의 아시스텐스 묘지에 묻혔습니다. 장례식에서는 조카 헨리크 루트가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의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생전과 그의 이론이 현대 철학과 신학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국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불만으로 묻히기를 거부했고 그의 예언대로 그의 사상은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실존주의의 아버지

키르케고르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존주의의 아버지, 문학 평론가, 유머가 넘치는 사람, 심리학자, 그리고 시인 등 다양한 측면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사상은 "개체성"과 "신앙의 도약"이라는 두 가지 개념입니다.

"신앙의 도약"은 키르케고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용어로 언급되며 종종 "신앙의 도약"이라는 용어로도 표현됩니다.

이는 한 개인이 어떻게 신을 믿거나 사랑으로써 행동하는가에 대한 그의 개념을 나타냅니다.

이는 이성적인 결정이 아니라 더 위험하고 초자연적인 것으로 이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설명됩니다.

이러한 신앙은 의심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신을 믿는다면 그는 동시에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의심이 없는 신앙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키르케고르는 자기비판과 내적 성찰을 강조하였습니다. 기반이 되는 존재로서의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개체성이 진리다."와 "진리는 개체성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객관적인 진리와 개인적인 개체성과 진리와의 관계에 대한 구별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개인이 동일한 것들을 다르게 여러 형태의 믿음과 관계한다고 믿는 것처럼 감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동일한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기본적으로 개체성이 종교적인 문제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의심이 신앙의 요소이며, 그 의심이 종교적인 교리들에 대해 객관적인 확실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교리가 논리적으로 합당하다는 결론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신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신앙은 개인적 관계와 참여의 경험에 근간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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